다카쓰카사 노부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다카쓰카사 노부코는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인 도쿠가와 마사코를 고미즈오 천황의 중궁으로 삼기 위한 과정에서 에도 막부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1664년 다테바야시 번주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결혼하여, 1680년 쓰나요시가 쇼군이 되면서 에도 성 오오쿠에 들어갔다. 쓰나요시의 생모 게이쇼인과의 갈등, 측실 오덴노가타의 권세로 인한 오오쿠 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며, 독일인 의사 엥겔베르트 켐퍼와 만나는 등 다양한 일화를 남겼다. 1709년 남편 쓰나요시가 사망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사망했으며, 사후 쓰나요시 살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도쿠가와 쓰나요시 - 겐로쿠 살생금지령
겐로쿠 살생금지령은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1687년에 제정한 생물 살생 금지 법령으로, 등록제도와 포상금 지급 등 단속을 강화했으나 쓰나요시 사후 폐지되었으며, 생명 존중 사상 확산과 아동 보호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다. - 도쿠가와 쓰나요시 - 에이타이교
에이타이교는 도쿄 스미다강에 위치한 다리로, 에도 시대에 건설되어 재건을 거듭했으며, 교통로 역할, 철교 대체, 아치교 건설, 역사적 건조물 지정, 토목 유산 선정, 중요 문화재 지정 등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문학 작품과 영화에도 등장한다. - 다테바야시 도쿠가와가 - 도쿠가와 도쿠마쓰
도쿠가와 도쿠마쓰는 에도 시대 인물로 다테바야시번주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아들이며, 아버지가 쇼군 후계자가 되면서 다테바야시 도쿠가와 가문을 이었으나 5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 다테바야시 도쿠가와가 - 쓰루히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장녀)
쓰루히메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딸로, 아버지에 의해 학 관련 규제를 담은 법령이 공표되었으나, 그녀의 사망과 함께 사실상 해제되었다. - 에도 막부의 미다이도코로 - 덴쇼인
덴쇼인은 에도 막부 말기, 쇼군의 부인으로서 도쿠가와 가문의 구제를 위해 헌신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쿠가와 이에사토를 양육 및 지원하며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는 인물이다. - 에도 막부의 미다이도코로 - 스겐인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딸인 스겐인은 도요토미 히데카쓰와 사별 후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재혼하여 2대 쇼군비가 되었고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생모이다.
다카쓰카사 노부코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다카쓰카사 노부코 |
로마자 표기 | Takatsukasa Nobuko |
출생 | 1905년 3월 7일 |
사망 | 1930년 5월 11일 (25세) |
배우자 | 쇼와 천황 |
자녀 | 제1황녀: 데루노미야 시게코 제2황녀: 히사노미야 사치코 제3황녀: 다카노미야 가즈코 제4황녀: 요리노미야 아쓰코 |
가계 | |
아버지 | 다카쓰카사 노부스케 |
어머니 | 데루코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9녀) |
친정 | 다카쓰카사 가문 |
작위 | |
황후 | 데이메이 황후 |
기타 정보 | |
신위 | 정일위 |
훈위 | 훈일등 보관장 |
2. 생애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자신의 딸 도쿠가와 마사코를 고미즈노오 천황의 중궁으로 만들기 위해, 노부코의 어머니가 되는 제1황녀 분치 여왕과 그 모후인 요쓰쓰지 요쓰코를 궁에서 추방하고 반대파를 제거하는 등 에도 막부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간분 4년(1664년), 다테바야시번주였던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결혼했다. 엔포 8년(1680년), 쓰나요시가 쇼군에 취임하면서 에도 성의 오오쿠에 들어가게 되었다.
쓰나요시의 생모 게이쇼인과는 사이가 나빴다고 알려져 있으며, 쓰나요시와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역대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과 미다이도코로 사이에 자녀를 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쓰나요시의 측실인 오덴노가타가 후계자의 어머니로서 권세를 누렸기 때문에 오오쿠 내에서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7]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나요시의 총애를 오덴노가타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동생 후사코를 통해 황궁에서 가장 학문에 뛰어나다고 칭송받던 에몬노스케를 미다이도코로 측의 오토시요리로 오오쿠에 데려왔다. 이후 에몬노스케는 오오쿠 시녀들을 총지배하는 쇼군 측 오토시요리가 되었고, 오오쿠에 쇼군의 측실로 오오스케를 들여, 문신파로서 오덴노가타와 게이쇼인에 대항하였다.
겐로쿠 4년(1691년), 독일인 의사 엥겔베르트 켐퍼와 에도 성 표어전에서 쓰나요시와 함께 대면했으며,[5] 켐퍼는 노부코를 "밀색의 둥근 얼굴의 아름다운 분으로, 유럽적인 활기찬 또렷한 검은 눈이 인상에 남았다. 모습으로 보아 키는 상당히 크고, 나이는 36세(실제는 41세) 정도로 생각되었다"라고 『일본지』에 기록했다. 또한 같은 해에는, 조카손녀에 해당하는 다카쓰카사 스케노부의 딸 야에히메(도쿠가와 요시후의 정실)를 데려다 양육했다.[2]
宝永일본어 6년(1709년), 쓰나요시가 죽자, 낙식하여 조코인이라고 칭했지만, 쓰나요시의 죽음으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향년 59세. 사인은 남편 쓰나요시와 마찬가지로 성인마진(홍역)이라고 한다. 쓰나요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노부코가 죽은 일로, 노부코가 자신의 오토시요리와 함께 모의하여 쓰나요시를 살해한 이후 본인도 자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드라마 오오쿠(2003년)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신빙성은 없다.
2. 1. 초기 생애
1651년 교토에서 다카쓰카사 노리히라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소석군'''이다.[1]1663년 10월 15일, 당시 다테바야시번 번주였던 도쿠가와 쓰나요시와의 혼인이 발표되었고, 이듬해 1664년 9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시녀들이 수행하여 내려가, 18일 신다 고텐에서 혼례를 올렸다.[2]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자신의 딸인 도쿠가와 마사코를 고미즈노오 천황의 중궁으로 삼기 위해, 노부코의 어머니가 되는 제1황녀 분치 여왕과 그 모후인 요쓰쓰지 요쓰코를 궁중에서 추방하고 반대파를 제거하는 등의 일을 벌였다. 이로 인해 노부코와 에도 막부는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노부코는 자녀가 없었지만, 쓰나요시와 함께 노를 감상하거나 제례 관람을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쓰나요시의 측실인 즈이슌인이 쓰루히메(도쿠가와 쓰나요시 장녀), 도쿠가와 도쿠마쓰를 낳은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2]
2. 2. 도쿠가와 쓰나요시와의 결혼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할아버지인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자신의 딸 도쿠가와 마사코를 고미즈노 천황의 중궁으로 만들기 위해, 노부코의 어머니가 되는 제1황녀 분치 여왕과 그 모후인 요쓰쓰지 요쓰코를 궁에서 추방하고 반대파를 제거하는 등 에도 막부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간분 4년(1664년), 다테바야시번주였던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결혼했다. 엔포 8년(1680년), 쓰나요시가 쇼군에 취임하면서 에도 성의 오오쿠에 들어가게 되었다.
쓰나요시의 생모 게이쇼인과는 사이가 나빴다고 알려져 있으며, 쓰나요시와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역대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과 미다이도코로 사이에 자녀를 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쓰나요시의 측실인 오덴노가타가 후계자의 어머니로서 권세를 누렸기 때문에 오오쿠 내에서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7]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나요시의 총애를 오덴노가타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동생 후사코를 통해 황궁에서 가장 학문에 뛰어나다고 칭송받던 에몬노스케를 미다이도코로 측의 오토시요리로 오오쿠에 데려왔다. 이후 에몬노스케는 오오쿠 시녀들을 총지배하는 쇼군 측 오토시요리가 되었고, 오오쿠에 쇼군의 측실로 오오스케를 들여, 문신파로서 오덴노가타와 게이쇼인에 대항하였다.
간분 3년(1663년) 10월 15일, 당시 가미노쿠니 관린번주였던 도쿠가와 쓰나요시와의 혼인이 발표되었고, 이듬해인 간분 4년(1664년) 9월에 도쿠가와 와코(동복문원)의 시녀들이 수행하여 내려갔으며, 18일 신다 고텐에서 혼례를 올렸다.[2] 자녀는 없었지만, 쓰나요시와 함께 노를 감상하거나 제례 관람을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측실인 즈이슌인(오덴노가타)이 도쿠가와 쓰루히메(도쿠가와 쓰나요시 장녀), 도쿠가와 도쿠마쓰를 낳은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2]
겐로쿠 4년(1691년), 독일인 의사 엥겔베르트 켐퍼와 에도성 표어전에서 쓰나요시와 함께 대면했으며,[5] 켐퍼는 노부코를 "밀색의 둥근 얼굴의 아름다운 분으로, 유럽적인 활기찬 또렷한 검은 눈이 인상에 남았다. 모습으로 보아 키는 상당히 크고, 나이는 36세(실제는 41세) 정도로 생각되었다"라고 『일본지』에 기록했다.
2. 3. 오오쿠에서의 생활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간분 4년(1664년)에 결혼하여 엔포 8년(1680년), 쓰나요시가 쇼군에 취임하면서 에도 성의 오오쿠에 들어갔다.[7] 쓰나요시의 생모인 게이쇼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쓰나요시와의 사이에서는 자녀를 두지 못했다.쓰나요시의 측실인 오덴노가타가 후계자의 어머니로서 권세를 누리자, 노부코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동생 후사코를 통해 황궁에서 학문에 뛰어나다고 칭송받던 에몬노스케를 미다이도코로 측의 오토시요리로 오오쿠에 데려왔다. 에몬노스케는 오오쿠 여관들을 총지배하는 쇼군 측의 오토시요리가 되었고, 이후 오오쿠에 쇼군의 측실로 오오스케를 들여, 오덴노가타와 게이쇼인에 대항하였다.[8]
쓰나요시와는 함께 노를 감상하거나 제례 관람을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오덴노가타가 쓰루히메(도쿠가와 쓰나요시 장녀)와 도쿠가와 도쿠마쓰를 낳은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2]
2. 4. 사망
宝永일본어 6년(1709년), 남편인 쓰나요시가 죽은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향년 5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도쿄도 다이토구의 관영사이며, 사인은 남편 쓰나요시와 마찬가지로 성인마진(홍역)이라고 한다.[1]쓰나요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노부코가 죽은 일로, 노부코가 자신의 오토시요리와 함께 모의하여 쓰나요시를 살해한 이후 본인도 자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드라마 오오쿠(2003년)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신빙성은 없다.
3. 일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생모인 게이쇼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쓰나요시와의 부부 관계에 대해서도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없었던 점 등을 들어 불화했다는 설이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불명이다.[6] 또한 측실인 오덴노가타가 후계자 도쿠마쓰의 생모로서 권세를 휘두른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 또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쓰나요시와 노부코가 잇따라 급사한 것으로부터, 쓰나요시는 노부코와 오다이쇼(御台所) 소속의 오넨가시(御年寄)인 이즈노쿄쿠(伊豆局)에 의해 살해당했고, 노부코는 그 후 자결했다는 속설(『닛코칸탄마쿠라』)이 남아 있으나, 신빙성이 낮다.
3. 1. 게이쇼인과의 갈등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생모였던 게이쇼인과는 사이가 나빴다고 여겨지며, 쓰나요시와의 부부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역대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과 미다이도코로 사이에서 자녀를 둔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7] 또, 쓰나요시의 측실인 오덴노가타가 후계자의 어머니로서 권세를 발휘하였기 때문에 오오쿠 내에서의 문제도 많았던 듯 보인다.[7]그러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쓰나요시의 총애를 오덴노가타로부터 떼어 놓기 위해, 동생인 후사코를 통해 황궁에서 가장 학문에 뛰어나다는 칭송을 듣던 에몬노스케를 미다이도코로 측의 오토시요리로 삼아 오오쿠로 데려왔다. 그 이후 에몬노스케가 오오쿠 시녀들의 총지배를 담당하는 쇼군 측의 오토시요리가 되면서, 오오쿠 안에 쇼군의 측실로써 오오스케를 들여, 문신파로서 오덴노가타와 게이쇼인에 대항하였다.
3. 2. 쓰나요시 살해설
호에이 6년(1709년), 남편인 쓰나요시가 죽은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향년 5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도쿄도 다이토구의 간에이지이다.쓰나요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노부코가 죽은 일로, 노부코가 자신의 오토시요리와 함께 모의하여 쓰나요시를 살해한 이후 본인도 자결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드라마 오오쿠(2003년)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신빙성은 없다.[6] 쓰나요시와 노부코가 잇따라 급사한 것으로부터, 사실 쓰나요시는 노부코와 오다이쇼(御台所) 소속의 오넨가시(御年寄)인 이즈노쿄쿠(伊豆局)에 의해 살해당했고, 노부코는 그 후 자결했다는 속설(『닛코칸탄마쿠라』)이 남아 있으나, 신빙성이 낮다.
4. 관련 작품
다카쓰카사 노부코를 소재로 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종류 | 작품명 | 출판사/방송사 | 작가/배우 | 비고 |
---|---|---|---|---|
소설 | 최악의 장군 | 集英社 문고 | 아사이 마카테 | |
만화 | 애정의 대옥 모란의 장 「개 장군 綱吉에의 복수」 | 슈에이샤 | 요호 고로(원작), 토미자와 미도리(작화) | |
대옥 | 하쿠센샤 | 요시나가 후미 | 남녀 역전 설정 | |
영화 | 徳川女系図 | 도에이 | 三浦布美子 | |
大奥〜永遠〜[右衛門佐・綱吉篇] | 쇼치쿠 | 宮藤官九郎 | 남녀 역전 설정, 역할 이름은 신페이 | |
텔레비전 드라마 | 대옥 | 関西テレビ | 藤田佳子 | |
怪談(大奥あかずの間) | 毎日放送 | 扇千景 | ||
日本名作怪談劇場(대옥 ○비 아카즈노마) | 東京12チャンネル | 雪代敬子 | ||
대옥 | 간사이 테레비 | 司葉子 | ||
八代将軍吉宗 | NHK 大河ドラマ | 松原智恵子 | ||
元禄繚乱 | NHK 대하드라마 | 涼風真世 | ||
大奥 | フジテレビ | 佐藤綾 | ||
大奥〜華の乱〜 | 후지 테레비 | 藤原紀香 | ||
水戸黄門 (제38부) | TBS | 飯島順子 | ||
大奥 | NHKドラマ10 | 本多力 | 남녀 역전 설정, 역할 이름은 신페이 |
4. 1. 소설
아사이 마카테의 소설 《최악의 장군》(集英社문고, 2019년)에서 다카쓰카사 노부코를 다루고 있다.4. 2. 만화
- 요호 고로 (원작), 토미자와 미도리 (작화), 《애정의 대옥 모란의 장 「개 장군 綱吉에의 복수」》 (슈에이샤, 2010년)[1]
- 요시나가 후미, 《대옥》 (하쿠센샤) ※남녀 역전 설정[1]
4. 3. 영화
- 徳川女系図(1968년, 東映, 배우: 三浦布美子)
- 대옥~영원~[우에몬사·綱吉편|大奥〜永遠〜[右衛門佐・綱吉篇]]](2012년, 松竹, 배우: 宮藤官九郎) (남녀 역전 설정, 역할 이름은 신페이)
4. 4. 텔레비전 드라마
- 대옥(1968년, 関西テレビ) - 배우: 藤田佳子
- 괴담 (대옥 아카즈노마)(1972년, 毎日放送) - 배우: 扇千景
- 일본명작괴담극장 (대옥 ○비 아카즈노마)(1979년, 東京12チャンネル) - 배우: 雪代敬子
- 대옥(1983년, 간사이테레비) - 배우: 司葉子
- 八代将軍吉宗(1995년, NHK 大河ドラマ) - 배우: 松原智恵子
- 元禄繚乱(1999년, NHK 대하드라마) - 배우: 涼風真世
- 大奥(2003년, フジテレビ) - 배우: 佐藤綾
- 大奥〜華の乱〜(2005년, 후지테레비) - 배우: 藤原紀香
- 水戸黄門 (제38부)(2008년, TBS) - 배우: 飯島順子
- 大奥(2023년, NHKドラマ10) - 배우: 本多力 (남녀 역전 설정, 역할 이름: 신페이)
참조
[1]
서적
大奥 女たちの暮らしと権力闘争
新紀元社
2007
[2]
서적
徳川「大奥」事典
東京堂出版
2015
[3]
문서
鶴姫君様御婚礼御用・鶴姫様御婚礼書物
国立公文書館
[4]
문서
玉輿記
[5]
서적
百花繚乱 江戸を生きた女たち
清流出版
2004-12
[6]
문서
徳川幕府の歴代将軍で正室との間に子女を儲けた例が少ない点に関する記述
[7]
문서
오덴이 도쿠마쓰와 쓰루히메를 낳은 것과 관련된 오오쿠 내 권력 다툼에 대한 기록
[8]
문서
다이시노스케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설명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